김윤선님 블로그에 올려진 글과 풍경 2009-04-03 08:46:57  
  이름 : 옥연정사      조회 : 2222      

옥연정사는 조선 선조 19년(1586)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 선생이 평소 가까이 지내던 승련 탄홍의 도움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의 전후사정을 기록한 징비록(국보132호)을 쓰셨던 역사의 현장이다. 대가족의 살림과 사당이 있는 종택과는 다른 서애 선생만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원락재...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遠樂齋)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논어(論語)중 '이른바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아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2칸 마루 애오헌은 도연명의 시에 '吾亦愛吾廬(오역애오려),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한 시어에서 따 온 것이다.  서애선생께서 이 방에 기거를 하시며 징비록을 서술하셨다.

원락재에 앉아 문을 통해 밖을 보니 액자 속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짚신과 고무신은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서당채...옥연서당

서당채의 이름이 세심재(洗心齋)이다. 세심재는 마음을 닦고 씻는 곳이란 뜻이다.
감록헌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1칸이 있으며 서애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다.

서애선생께서 심으셨다는 450년 된 소나무

<옥연정사의 정문인 간죽문>

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낙동강 푸른 줄기와 하얀 백사장을 만날 수 있고 건너편으로 하회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부용대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있다.

서애선생이 간죽문을 두고 지은 시 한편이 있다.

<간죽문>

노옹파오수 (老翁罷午睡)   노옹이 낮잠에서 막 깨어나,
부수행곡정 (負手行曲庭)   뒷짐 지고 뜨락을 거닐도다,
행처의이란 (行處意易蘭)   거닐다가 기분이 더욱 상쾌해 지면,
출문간수죽 (出門看修竹)   문을 나서 대 숲을 바라보네,
적여강풍회 (適與江風會)   강 바람 이라도 불어 나부끼면,
청음산빙옥 (淸音散氷玉)   옥이 부숴지는 해맑은 소리,
시유고문인 (時有叩門人)   더러 날 찾는 이 있는데,
망형수주객 (忘形誰主客)   누가 주인이고 나그넨지 몰라라

간죽문을 나와 가파른 절벽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따라 조금씩 가봤다...

이 길을 따라 가면 겸암정사까지 갈 수 있다고 하나 위험하여 지금은 갈 수 없는 모양이다.

눈을 돌려 지나 온 곳을 돌아보니 깍아지른 절벽이 우뚝 서있다... 아찔하다. 이 절벽이 부용대이다.

냉큼 돌아왔다...ㅎㅎ

절벽에 의지하여 핀 대극과 기린초

이곳은 화천서원.... 옥연정사 입구 100m전 쯤에 위치해 있다.

화천서원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학덕을 흠모한 유림이 이곳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인재를  양성 하기 위하여 정조 10년 (1786)에 세운 서원이다. 겸암 류운룡은 서애 선생의 맏형이다.

가파른 길을 피해 화천서원 옆으로 난 너른 길을 따라 부용대에 오르기로 했다.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

부용대 꼭대기에서 솔밭을 따라 옥연정사 반대편 길로 내려가니 겸암정사가 보인다.
겸암정사는 겸암 류운룡(1539~1601) 선생이 1567년(명종22)에 세워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겸암정사 입구에 있던 두 마리 개가 어찌나 경계를 하고 짖어대는지 무서워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곳이 겸암정사이다... 다음 날 하회마을로 들어가서 강 건너에서 볼 수 있었다.

부용대에서 내려 오는 길에 아래를 보니 옥연정사가 조용히 앉아있다.

부용대에 가지 않은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고 있다. 제법 큰 우렁이를 잡았다고 좋아했다~

하룻밤 고무신에서 신세를 진 우렁이들을 다음날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ㅎㅎ 

누구는 집에 가져가서 우렁이된장 끓일까 했지만..ㅋㅋ

줄맞춰 쌓여진 장작더미를 보니 큰뫼님의 수고가 고스란히 보인다.

우리가 묵었던 세심재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굴뚝을 통해 연기가 나온다~

굴뚝은 기둥으로 높이 솟은 게 아니라 아주 땅과 가까이 있었다... 이런 굴뚝은 처음 본다...신기하다.

서애선생이 공부하시던 그 방에서 우리도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공부를 했다...ㅎㅎ

옥연정사에서는 취사를 할 수 없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고이 지키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저녁은 마을 초입에 살고 계신 할머니댁에서 직접 해주셨다...

그야말로 할머니가 해 주신 소박한 시골밥상....식당에서 먹는 밥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맛~

인심도 넉넉하시지...평소에 밥 보기를 돌같이 하던 공씨 형제가 젤로 많이 먹었음...ㅋㅋㅋ

옥연정사에서는 하룻밤 묵은 손님들에게 아침을 별도의 비용없이 해주신다.

그리고 주인 가족과 손님이 한 자리에 앉아 대가족이 되어 함께 식사를 한다.

안주인이신 해달뫼님의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아니 예술이다.

꾸미지 않은 깔끔한 맛....먹고 보니 그릇이 싹 비워졌다~

이 자리는 밀과 산이 앉아서 먹은 자리...ㅋㅋㅋㅋ

주말에는 하회마을 강나루에서 저 배를 타고 옥연정사까지 건너 갈 수 있단다.

전날 밤 우리가 묵었던 옥연정사가 강 건너에 있다...손 뻗으면 곧 닿을 듯 하다~

지난 밤 건너 편에 있던 하회마을에 서서 옥연정사를 보니 고향집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부용대가 눈 앞에 우뚝 솟았다...ㅎㅎ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배 위에 올라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좋아한다...

지금은 옥연정사가 어떤 곳인지 몰라도 옥연정사에서의 하룻밤은 멋진 추억이 되어

이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좋은 영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작년 8월 옥연정사를 다녀온 뒤 그 곳은 내 기억에 참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적당히 독특한 홈뒹굴이 아들에게도 그 곳은 또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따금 옥연정사 홈피를 찾아 소식을 접하곤 했다.

민들레의 홈스쿨링 게시판에 '해달뫼'란 이름으로 글을 올리셨던 바로 그 해달뫼님을
뜻하지 않게 그 곳에서 만난 것이었다. 

마치 동지를 만난 듯한 기쁨과 설렘이 있었다.
아쉽게도 바쁜 일정으로 해달뫼님께서 차려주신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뒤에
오는 일행편에 부채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따라 다시 그 곳을 찾았다.

나는 시험을 안보는데 왜 가냐고 묻는 아들은 옥연정사라는 말에 흔쾌히 여행을 시작했다.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주인장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이번엔 옥연정사 앞에 있는 100년 쯤 된 은행나무에서 지난 가을에 수확한 은행을 선물로 주셨다.

다음엔 가을에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


또 가고 싶은 곳~ 옥연정사
우먼라인....